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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에세이] 요한, 씨돌, 용현 by SBS 스페셜 제작팀, 이큰별, 이승미

 

'요한, 씨돌, 용현' 內




#1
"이건 자연의 질서거든.
자연에서는 저절로 흙이랑 풀이랑 같이 다 자랐단 말이야, 옛날에는.
이게 진짜배기 자연의 질서라고.
우리 사람이 볼 땐 무질서 같아 보이지만."


#2
"산초 뿌린 데 향이 기가 막혀.
약초 덩어리가 황금 덩어리야, 황금 덩어리.
하~ 냄새 맡아봐. 달여 잡수는 거야.
이게 대자연의 신비죠. 실뿌리 하나 다치면 안 돼요.
실뿌리 하나 다치면 안된다고."


#3
"도와주는 게 자기 사명이라고 생각하고, 약자를 돕는 일을 사명처럼 여기고 살았어요.
우리를 돕겠다고 그렇게 자기 몸을 내던지고 했던 그런 사람으로...
기억이 아니고 얘기를 해보니까 그래요."
-장남수/故 장현구 열사 아버지-


#4
박종철 학생이 경찰에게 고문당하다 질식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몸 편히 숨 쉬고 있는 것 자체가 죄스러웠다는 그는 즉시 거리로 뛰쳐나와 사람들과 함께 정권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.


#5
"씨돌 아저씨는 마음이 순해서 항상 웃는 얼굴이고, 누구한테 화낼 줄도 모르고 참 인정이 많았어.
언젠가는 내가 '아이고 이제는 자꾸 나이 먹어서 큰일이야' 그러니까 '이 꽃을 꽃으면 한 십년은 젊어질 거예요' 이러면서 꽃을 따다 꽂아주고 그러더라고."
-배옥희/봉화치 마을 주민-


#6
맹씨는 자신이 용현을 도와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용현으로부터 배우는 게 많다고 말합니다.
왕성하게 활동을 하다가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장애를 갖게 된 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을 텐데, 용현은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밝게 이겨내고 있다는 것입니다.
성격이 매우 밝아서 요양원에 있는 사람들에게 늘 먼저 웃으면서 인사하고, 무엇보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장애를 이겨내려는 의지가 매우 강해 그 모습이 감동적이라는 것입니다.


#7
씨돌이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펼쳤던 영웅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 옥희 할머니와 주민들은 놀라워하면서도 씨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.
봉화치에서 야생동물은 물론 나무 한 그루, 꽃 한 송이도 귀히 여기는 모습을 봐온 데다가, 그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씨돌이라면 참사의 현장에 누구보다 먼저 뛰어나갔을 거라고 말합니다.


#8
"...자연은 나의 친구지.
개구리도 고라니도 새들도 내 친구고..."


#9
마을 옹달샘에 누군가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 갔다는 것입니다.
쓰레기 때문에 옹달샘이 오염돼서 이곳에 사는 가재며 도롱뇽, 개구리들이 숨을 못 쉬어서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배워먹지 못한 짓을 하느냐며 울분을 토하더니, 성이 풀리지 않는지 본인의 집으로 씩씩대며 내려가 버리더랍니다.


#10
인간으로서 당연한 일들을 우리는 얼마나 모른 척 지나쳤던가.
얼마나 까맣게 잊은 채 살고 있었던가.
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.


#11
"용현 씨, 우리 처음에 만났을 적에 무슨 맘으로 우리를 그렇게 도와주고 우리 연관이에 대해 살뜰히 알려줬나?"
...
"가족 같아서"

'요한, 씨돌, 용현' 內




#12
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,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을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.
그리고 눈에 띄는 별들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에서, 눈에 띄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가 소중한 별들도 주목을 받는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.


#13
"요한, 씨돌, 용현으로 살아오는 동안 민주화 운동도 하고 삼품백화점 붕괴사건에서 사람도 구하고 정선에서는 자연도 지키고, 그런데 그런 일들이 정작 선생님께 도움되거나 관계되는 일은 아니잖아요.
왜 그런 희생적인 삶을 사셨어요?"
우리의 질문에 용현의 왼손이 주저 없이 움직입니다.
노트 위에 거침없이 적어 내려간 말은 ... (중략)

'요한, 씨돌, 용현' 內


'인간으로서 당연한 일'


#14
...도라지 아지매가 살랑살랑 솔 넘어오셨다.
돌능금하고 자주감자, 도라지 캐고 맛이라도 보여드려야지.
사람 없는 곳에 사람이 그리워서 말없이 쏟아버린 도라지.
도라지 아지매 옛정에 나. 옛정에 난 울었지. 울었지.

'요한, 씨돌, 용현' 內





(2020/12/30 ~ 2021/01/03)